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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성장기

591강 육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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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강

육아-1

 

문-요즘 젊은 엄마들은 대부분 자기 자식을 직접 키우지 않고 보육기관이나 남의 손에 맡기는데 아이는 정말 누가 키워야 바른 것인가?

 

앞으로는 지식사회이기 때문에 지식사회는 고등교육 이상을 받은 사람들이다. 대학을 나오고 박사가 되고 이런 사람들의 세상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학을 나오고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성장을 할 때는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키운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자기 자식밖에 모르고 아이 키우느라고 젊음을 다 보내고 아이를 대학을 보낸다고 한다.

 

또 대학원을 보낼 때까지 뒷바라지를 한다. 그렇게 하면 기본이 30에 아이를 낳아서 아이가 30이 될 때까지 키우면 60대가 되어서 인생이 끝난다. 나머지 조금 있는 것은 인생 산다고 노력을 하려고 달려들다가 죽는다. 인생을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젊었을 때 노력을 했어야 자기 인생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60이 될 때까지 아이 키우느라고 젊은인생이 다 끝났는데 무엇을 할 것이 있는가?

 

자식 잘 키우라고 백성의 피와 땀을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잘 보라. 과거에 우리 선조님들의 사대부 마님들은 자식을 내가 키우지 않았다. 왜 그렇게 했는가? 사람들이 알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그렇게 하고 살았다. 왜? 사대부 마님 한 사람이 성장하는 데는 대지주로서 신분이 위에 있어서 노동을 한 사람들은 먹을 만큼만 주고 지주에게 다 들어온다. 그래서 사대부가 부자이다.

 

이렇게 들어온 것은 노동자의 피와 땀을 빨아 가지고 자식 공부시키고 곳간에 가득 채우고 힘을 갖는다. 지금의 기업인이나 사대부나 똑같다. 규모가 작고 클 뿐이다. 지금 질이 좋은 집안은 수입이 좋다. 뭔가 차려놓으면 돈이 막 들어오고 밑에 일반 노동자는 일을 하는데 생산한 것은 업주가 하는 것이고 밑에 생산자들이 갖고 가는 것이 아니다. 생산하는 것을 모아서 간수하는 것은 업주가 하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식을 키우는데 굉장히 경제력이 많이 들어간다. 그렇게 쓰이는 경제가 누구로부터 창출된 것인가? 누가 피땀 흘려서 경제를 이룬 것인가? 백성들이 노동을 해서 경제를 일으킨 것이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투자를 해서 벌었다고 하고 노동자들로 인해서 돈을 벌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기본적인 투자할 경제가 노동자들이 고생을 해서 창출된 것을 거두어 놓은 것이 어느 정도 되니까 그것을 가지고 투자를 한 것이 아닌가? 투자비도 노동자의 것이다. 이제부터는 운용을 그것을 가지고 잘하는 것인데 이 자체도 투자를 해서 벌어들이는 것이다. 이 경제의 씨가 노동자의 것이다. 당신이 창출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영자가 땅 파서 감자 캐서 땅 팔아서 경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경제를 일으켜서 자식을 유학도 보내고 다하는데 노동자의 자식은 유학도 못 보낸다. 사대부에서 잘 자라서 사대부로 결혼해서 아이를 생산하니까 우수한 것들이 결합을 해서 나온 아이는 사대부에서 키우면 안 된다. 사람은 아이를 키우다 늙어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백성들의 피와 땀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그래서 남편의 내조를 하는데 남편은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

 

나랏일을 한다든지 이 사람의 남편은 사회에서 큰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남편을 보필하고 듀엣으로 일을 해야 한다. 남편을 보필해야지 아이를 위해서 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 키우는데 정성을 다하라고 그렇게 배움을 갖추고 뭔가를 갖추게 성장을 하게 한 것이 아니다. 자식 키우라고 백성의 피와 땀으로 고급인력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편이 사회에 나가서 큰일을 하니까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남편의 내조를 하고 뭔가 지적인 일을 하게 하려고 국민의 피와 땀이 그쪽으로 들어가도 괜찮았던 것이다. 그래서 듀엣으로 잘하게 되면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는 힘이 잘하게 되어서 힘이 국민들에게 다시 가서 환원이 되어 돌아가는 것은 하는 일이 국민이 살찌고 잘 살고 편안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을 위에 사람들이 다하지 않는가.

 

그러면 자식은 누가 키우는가? 고질량의 사람이 키우는 것이 아니고 자식을 키울 사람이 담당을 좀 해주어야 한다. 담당해주는 자가 70%를 간수를 해서 버릇이 나쁘면 버릇을 다스리고 뭔가를 하고 해주어야 하는데 30%는 직접 부모들이 개입을 해야 한다. 70%는 직접 개입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식을 키우면 자식이 부모를 원망하는 일은 0, 1mm도 없다.

 

자식이 성장을 해서 잘못되어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키운 유모를 원망한다. 삐딱하게 키웠다면 술 취정을 할 때 술 먹고 들어오면 부모 모르게 들어와서 유모에게 땡 깡을 부린다. 부모는 크는데 월권행위를 하지 않았고 30% 뒷바라지만 하고 이렇게 살펴 주는 것만 했기 때문에 부모에게는 원망할 할 일이 하나도 없다. 대자연의 법칙대로 했기 때문이다.

 

자식을 키우는 데는 질량이 있다. 질량을 보라. 살아나가는 질량과 자식을 키우는 데는 질량이 있다. 자식을 어디까지 성장을 시키는 데는 질량이라는 것이 있다. 사대부나 대학이나 대학원의 우수한 가르침을 받은 백성들의 피와 땀을 우수하게 많이 먹고 자란 사람들은 자식을 대할 때 자식을 위해서 30%만 도움을 주고 70%는 백성들과 사는데 힘을 써야한다.

 

이것을 모르고 스승님이 유모가 키워야 한다고 하면서 잘 되었다고 던져버리고 갖다 주게 되면 된다고 생각을 하면 안 되고 질량이 낮은 사람은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 맞다. 질량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회일 을 크게 할 수 있을 만큼 갖춘 사람은 질량이 큰 사람이다. 질량이 작은 것은 내 에너지를 사회를 더 크게 일할 사람을 위해서 투자를 했기 때문에 내 질량은 이만큼 있는 것이다.

 

바르게 안다면 내가 당신들 지식인을 위해서 그만큼 투자를 했는데 이 사회를 위해서 왜 이렇게 밖에 일을 못하고 당신들은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가라고 들이댈 수 있는 조건이 있다. 우리가 바르게 안다면 우리 국민이 이만큼 힘들게 사는 이유는 지식인 당신들에게 다 올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 당신들은 자격이 없으니까 전부다 내어 놓던지 일을 하든지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나중에 질량을 잘못 써서 세상이 엉망이 되면 지식인들이 이러한 법칙을 가지고 민중을 일으켜서 데모도 할 수 있고 법에 소송도 할 수 있고 사회에 전복도 시킬 수가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지금 오늘날 2차 대전을 겪은 그 씨앗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크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게 다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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