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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진리

8,162강 애완견 죽음(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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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2강

기르던 애와는 묘의 비참한 죽음(1/4)

 

문- 대인관계가 미흡해서 입도를 했는데 신랑이 지지하지 않은 상태인데 이 공부가 내 욕심인가 싶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집에서 기르던 애와는 묘가 비참하게 죽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이틀 전에 그런 상황을 눈으로 보여주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것을 계기로 해서 신랑이 결국에는 공부 허락을 하고 오늘 이 자리에 오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기에 동물의 희생이 있고 나서 여기에 오는 것을 신랑이 허락을 하게 되었는지? 그 비참한 대가로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낀다.

 

지금 애완동물 애호가들은 잘 들어야 한다. 과거에 우리가 살아갈 때는 애완동물은 동물이고 동물은 동물답게 살고 사람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던 시대이다. 동물 중에서도 동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서 지구에서 대접받는 것이 다르다. 먹이사슬로 되어있는가? 아니면 독립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것들이 사회에 지구촌에 전부다 필요해서 다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깊이를 몰라서 동물 취급을 하고 끝내는 것이다. 새는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종류는 어떤 역할을 하고 4발 달린 짐승은 어떤 역할을 하고 거기서도 종류에 따라서 역할 하는 것이 지구촌에 필요한 것이다. 사람하고 동물은 다르기 때문에 차별을 두는 것이다.

호랑이하고 여우하고는 차별을 둔다. 세상에는 뭔가 차별을 두는데 그 깊이를 알고 보면 인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깊이를 모르고 우리가 한쪽만 알고 있고 한쪽에는 편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사회에서도 사업을 하는 사람하고 종업원하고 차별을 둔다. 또 고귀한 사람하고 아닌 사람하고도 질량의 법칙으로 차별을 두는데 왜 그런지 알아야 한다.

지금은 우리가 왜 이렇게 동물들에게 정을 주는가? 사람에게 정을 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내 앞에 사람이 이 고양이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한테 상처를 많이 입으면 개한테 정을 주는 것이다. 내 주위에 사람들에게는 정을 줄 곳이 없고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개는 예뻐해 주면 따르기 때문이다. 먹이를 주어도 좋다고 따르고 그것이 좋아서 정을 주는데 내가 정을 준 것이 사고가 나서 다리가 불어지면 미칠 정도로 힘들어하는 것은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이 들지 않은 것이 다리가 불어져서 절뚝거리면서 다니면 ‘어머 다리가 불어져서 절뚝거리고 다니네.’ 말만 하고 끝나는 것이다.

나하고 정이 들면 점이든 만큼 힘들어진다. 사람은 정을 들이는 것이 사람이다. 정이라는 것이 그만큼 무서운 집착을 갖는다. 그래서 정을 좋게 해석을 하지 않고 집착을 갖기 때문에 안 좋게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동물하고 정을 들이는가? 사람하고 정을 들이는가? 여기에 따라서 우리가 대하는 것이 다르게 된다.

지금 동물애호가들은 사람보다 동물이 더 좋은 것이다. 사람한테 많은 것을 당하고 못 볼 것을 많이 보고 이렇게 해서 정이 동물에게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애완견이나 동물들에게 정을 준다. 사람이 사람하고 살아야 하는데 사람하고 사는 것이 각박해지고 기운이 서로가 주고받기가 가면 갈수록 힘들어진다.

그래서 자기계산대로 하다 보면 멀어져서 내가 갈 자리는 동물밖에 없다. 동물한테 정을 주는데 동물이 깨물고 이상한 짓을 하면 동물도 정이 가지 않아서 정을 떼려고 한다. 인간 자체가 나한테 도움이 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동물은 먹이 있는 곳으로 간다.

나를 좋아하고 먹이를 주면 좋아한다. 인간은 뭔가 먹이가 필요할 때는 먹이를 주는 대로 가고 배가 부르고 나면 다른 것을 찾는다. 인간은 배부른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만족한다. 인간은 배가 부르고 나서는 뭔가를 찾는데 그때는 지식을 찾는 것이다. 내가 뭔가를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다.

동물은 호기심은 있지만 뭔가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만이 지식을 만지고 배양하고 생산하고 질이 좋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수천 년 동안 지식을 엄청난 질량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인간이 최고의 업적이 지식을 빚어 놓은 것이다.

그 지식을 바르게 쓰는가? 못쓰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걸려있다. 그래서 마지막 후손들이 홍익인간으로 태어나고 앞에서 이루어 놓은 것을 어떻게 쓰는가? 후천시대부터 열리는 것이 이런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쓸 줄은 모르고 만지기만 해서 바르게 못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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