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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진리

10975강 꿈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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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75강

꿈 (3/3)

 

문-꿈을 잘 안 꾸었는데 정법을 하고 나서 꿈을 꾸는데 꾸고 나서 이것은 이런 것이라는 느낌으로 알 것 같다.

정확한 것은 정보를 가르쳐주는 것이 꿈이다. 나한테 뭔가 풀어주는 것이 꿈이 아니다. 대화는 사람이 뭔가 나한테 풀어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질량이 더 클 것 같은가? 사람이 나한테 말해주는 것이 우수하다. 꿈은 나한테 질량이 우수하지 않다. 꿈을 우리가 생각하기를 꿈이나 영이나 영적으로 나한테 접해오는 것은 질량이 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말 한마디는 엄청나게 질량이 담겨있는데 이것을 네가 소화를 하는가? 못하는가? 꿈을 꾸어도 개꿈이 되는 것은 소화를 못해서 개꿈이 되는 것이다. 꿈을 내가 소화를 잘하면 이것은 개꿈이 안 된다. 우리에게는 무수한 영적인 힘이 온다. 소화할 수 있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너를 갖추지 않았으면 소화가 안 되고 너를 갖추었으면 소화가 되어서 에너지로 쓸 수가 있다. 다이아몬드가 아무리 강하고 금이 아무리 물질이 강한 물질이라도 지식인 비물질 에너지는 못 따라간다. 비물질 에너지는 물질을 운용한다. 우리가 영적인 힘이라고 하니까 신들이 가르쳐준다고 대단한 것 같지만 가르쳐준 것으로 끝나는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는 달라지는 것이다. 내 질량이 없으면 바르게 우수하게 쓸 수가 없다. 가르쳐주니까 그대로 쓰는 것이고 이것을 푸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영 공부하는 것과 지식 공부하는 차이가 어느 정도 나는가? 영 공부는 영적으로 놀고 있는 것이다. 지식 공부는 우리 질량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다르다. 영 공부한다고 하면서 전부다 영을 메시지로 받는다고 하는데 메시지를 30년 받은 자가 사는 것이 어떻게 그 모양인가? 경제라는 것은 나한테 다 온다. 쓸 수 있게 온다. 너의 질량이 우수하면 너한테 필요한 에너지는 다 온다. 나는 아무리 써도 물질이 온다. 그러면 지킬 필요가 없고 쓰면 된다. 그것이 너의 것이다. 멍청하고 무식한 자들이 돈만 모아서 가지고 있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무식한 자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들은 무식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돈은 내가 많은데 왜 못쓰는가? 무식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식을 갖추어 놓고 질량을 갖추어 놓은 사람은 이 물질을 쓸 줄을 안다. 어떤 재주를 가지고 사람들이 자기 재주를 바르게 쓰지 못하고 이쪽으로 오면 이것을 같이 어울러서 쓸 줄을 안다. 써야 빛이 난다. 못쓰면 있으나 마나이다. 오히려 없는 것이 낫다. 있는 것 때문에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갖출 것도 못 갖추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게된다. 그렇게 하다가 20-30년이 간다. 젊음이 이것을 지키면서 깨먹은 것이다. 없으면 이것도 부딪치고 저것도 부딪치면서 나를 갖출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는데 물질을 주다 보면 지금 재벌의 집안이 되어서 물질을 많이 이루어 이 물질을 어떻게 쓸지를 모르니 자식들이 물질에 섞여서 같이 성장을 한다. 나중에 어느 정도 크면 자식을 과장으로 하고 사장으로 하고 물질을 다스리라고 물질을 주는데 이것을 다 쓰지 못한다. 내 자리 지킨다고 10-20년 그렇게 가고 나면 너 인생은 나중에 큰일 난다. 물질을 안 주었다면 세상을 배우고 너의 질량을 키웠을 것이다. 질량을 키우면 그 물질은 얼마든지 나한테 오게 되어있는데 재벌 자식들이 잘못하면 아주 불쌍한 자식들이다. 인간은 배우고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본연의 의무이다. 거기에 태어나면 거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갖추고 배워야 하는 것이 의무이다.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시간을 달리 쓰고 나면 너한테 아픔으로 다가온다. 왜? 세상은 다음을 나한테 주기 때문에 그다음을 내가 받아서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나한테 준 것을 배우고 갖추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못 갖추고 나면 다음에 오는 것을 내가 처리를 못해서 힘이 들게 되어있다. 인간은 의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너의 의무가 있다. 너를 갖추는데 노력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것을 소홀히 했을 때 너는 아픔을 맛보고 슬픔을 맛보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것을 만지게 된다. 병도 오게 되고 뭐든지 오게 되는 것이다. 너를 갖추어야 할 의무를 인간은 누구든지 받아서 오는 것이다. 아프리카 현지에 태어났으면 거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소화를 해내야 한다. 그것을 노력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내가 함양에서 태어났으면 함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흡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네가 서울에 갔으면 서울에서 무엇이든 보이고 들리는 환경을 소화를 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내가 미국에 살면 미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흡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을 흡수를 안 하면 뒤에 네가 아픔을 겪어야 한다. 우리가 이제는 생각이 무엇인지 꿈이 무엇인지 메시지가 무엇인지 질량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자연의 법칙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이제 하나님이나 부처님한테 빌 때가 지났다. 지식사회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무식한 사회는 빌고 무릎을 꿇는 것이다. 무식하고 힘이 없을 때이다, 힘이 있고 지식을 갖추고는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다. 비굴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허황된 메시지에 놀아나지 않는다. 이것을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때 내 것이 된다. 소화를 못하면 너의 것이 아니다. 소화를 못하니까 어디에 가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을 받아먹을 사람? 여기서 안 되면 저기 가서 또 말을 한다. 메시지를 받은 것을 자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받아먹을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것이다. 내가 소화를 하면 이것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영적인 것을 받았을 때 내가 이것을 소화를 해서 쓸 수 있는 사람이면 남한테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가 쓴다. 꿈을 꾸어서 작은 것이라도 내가 소화를 해서 쓰는 것이지 누구한테 이야기하지 않는다. 못 쓰는 사람이 이야기하러 다닌다. 왜? 나 대신에 네가 쓸 수 있는가? 묻고 다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식는다. 이제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 모든 환경을 쓸 수 있는 나의 질량을 갖추어야 한다. 세상에 어떤 일도 처리할 수 있는 나의 질량을 갖추어야 한다. 작은 것이라도 쓸 수 있는 나의 질량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으니까 내가 하나하나 공부하는 원리도 가르쳐준다. 공부하는 원리는 다른 것이 없다.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을 잘 듣는 것이다. 질량이 약하면 약한 대로 듣고 흡수하고 지나가면 된다. 질량이 조금 밀도가 있으면 내가 듣고 조금 생각하면서 만져 보기도 하고 약한 것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나한테 들릴 때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듣고 지나가라. 밀도가 약하니까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일단 들리는 것은 나한테 필요하니까 들려주는 것이다. 듣고 지나가면 되는데 저런 말을 한다고 받아버리면 안 듣고 가는 것이다. 듣고도 버리고 가는 것이 된다. 나한테 온 것을 왜 불평하는가? 이유가 있어서 온 것이다. 이유가 없어서 오는 것은 0.1도 없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올 때는 이유가 있어서 오는 것이다. 어떤 것은 불평을하고 어떤 것은 좋고 가리기 시작하면 나는 얻을 것을 못 얻고 가는 것이다. 모기한테 물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면 앉아 있어야 한다. 네가 모기한테 안 물리게 미리 잘 갖추어 놓지 그랬니? 많이 못 갖추었으면 모기가 있어도 가서 갖추어야 한다. 내가 질량이 좋아지면 거기에 안 간다. 모기를 다 막아주는 곳에 간다. 나를 질량을 잘 갖추어 놓으면 이 사람을 모시는 곳이 다르다. 모기가 우글거리는 대서 모시러 오는 것이 아니고 뭔가 환경이 좋은 곳에서 모시러 와서 한마디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 이때는 에너지 질량을 많이 써야 나를 모실 수 있는 것이다. 물질이 많이 들어간다. 그것을 갖추어 놓아야 가능하다. 왜 갖추어 놓지 않았는가? 그러니 모기 물리는 곳에 가지 않은가? 이런 것도 하나의 공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공부를 몇 번 하다가 보면 모기 물리는 곳에 안 가도 된다. 너는 어떤 환경에서 공부를 해야 하니 이렇게 하자. 왜 모기 물리는 곳에서 하면 안 되는가? 한마디라도 듣고서 소화를 해야 하는데 들으려고 하면 모기가 물어서 간지러워 소화가 안 된다. 말을 듣고 소화를 해야 하는데 소화가 안 된다. 우리가 몸의 온도가 37도 안 밖의 온도를 가지고 있는데 온도가 안 맞으면 산만해져서 뭔가가 질량을 주어도 소화를 많이 못 한다. 환경이 좋은 곳에서 한마디를 들어도 들어오게 이런 곳을 만들어서 스승님을 모시면 그때 법문이 다르다. 왜? 지금은 이런 환경에서 하면 저 사람이 날씨가 쌀쌀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법문을 거기에 맞추어서 낮춰서 한다. 그래서 한 템포 낮추어서 법문이 나오는 것이다. 저 사람은 돈이 없어서 법문을 들으면서 걱정을 많이 할 사람은 좋은 법문을 주어도 너한테 안 들어갈 것이니 낮추어서 들어갈 만하게 해주어야 한다. 스승님을 어디에 모시는가에 따라서 질량이 다르다. 나 환경에 맞추어서 스승님을 모시면 분발을 해서 우리가 스승님을 좋은 곳에 모실 생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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