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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5,100강 한 가지 논리에서 벗어나라.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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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0강

탁함의 기준(3/3)

 

문-남녀가 밤에 만나서 사랑을 나눌 때 서로한테 손해는 하나도 업는데 종교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왜 그런가?

 

부정이 만들어지는 것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어떤 지식을 받아들였는가에 따라서 꼽혀있는 것이다. 자기의 지식으로 분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못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어디에 치우쳐서 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 배웠기 때문에 여기에 묶여있는 것이다. 질문한 것이 다른 것이다. 남녀가 만나서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데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좋아한다고 말해야 한다. 언어를 잘 사용해야 한다.

 

여자 남자가 만나서 관계를 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만나서 받아주면 좋아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좋아미치는 것이 있는데 좋아하는 것이다. 사랑은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면 탁한 기운도 엄청나게 정리가 될 수가 있다. 남녀가 좋아할 때 변형이 될 수 있는 시기가 있다. 인생의 길이 바뀐다. 그때는 굉장히 맑은데 시간이 좀 지나면 서로가 욕심을 낸다.

 

자기 논리로 자기 방법으로 가다 보면 다시 탁해지는 것이다. 남녀가 만날 때는 서로를 아껴서 만난다. 아낀 것이 초발심이 3년이라도 가야 하는데 만나서 헤어지는 길로 자기 욕심을 낸다. 이제부터 또 탁해진다. 탁한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로 탁해진다. 자기 방법대로 안 된다고 해서 화를 내고 난리를 친다. 그것은 갖춤의 부족이다. 종교의 논리를 갖다 대면 종교의 논리가 정법이라고 할 것인가? 그 사람들의 논리이다.

 

약해서 거기에 갇혀서 있을 필요가 없다. 이제는 지식인들이 아닌가?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알고 나면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기독교에 오래 있다 보면 기독교 논리로 무장을 하게 된다. 다른 것을 배타하게 된다. 불교의 논리에 젖어있으면 다른 것은 배타를 한다. 배타를 하는 것은 정법이 아니다. 정법은 모든 것을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지는 좋다고 하고 한 가지는 나쁘다고 한다면 정법이 아니다.

 

사회에서 큰 공부를 하지 못했다. 종교의 논리는 한쪽의 논리이다. 종교의 논리도 있을 수가 있고 다른 논리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을 장점을 잘 살려서 융합해서 같이 도반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유불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