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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진리

612강 과거 내조 신앙생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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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강

과거 내조-1 신앙생활

 

문-할머니 어머니 세대들은 내조의 방법으로 가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절하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것도 내조가 맞습니까?

 

과거형이 있고 미래형이 있다. 과거에는 남편을 위해서 빌고 자식을 위해서 빌었다. 빈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고 노는 손을 비비는 것이다. 집에 있는 시간에 절에 가고 집에 있는 시간에 산에 가서 두손을 비볐다. 이것도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절하고 무식할 때 말이다. 앞으로 지식사회를 살려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짓은 중단하고 남편을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짓은 무식할 때 하는 짓이다.

 

무식한 자라고 인정을 한다면 빌어야 한다. 분별력이 없고 옳고 그름을 모르고 뭔가를 내조할수 없다면 빌기라도 해라. 이것도 노력이다. 이것은 무식한 사람의 방법이다. 그러면 유식한 사람이라고 말을 들으려면 우리는 연구를 해야 한다. 우리 집안이 왜? 어려움이 안 풀리고 이렇게 되는가?라고 연구하고 노력하고 찾아보고 이것을 바르게 찾아서 우리가 노력해나가는 방법으로 틀어나가는 것을 해야 한다.

 

이런 것을 하는데 어디 가서 하는가? 집에서 혼자 하면 잘 안 된다. 교회가서 목사에게 묻기도 하고 어떤 그룹이 형성이 되면 자기들끼리 만나서 다과나 식사자리를 만들어서 연구하고 의논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교회는 왜 가는가?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 가는 것이다. 시간을 맞추어서 자리에 왔다는 것이다. 이제는 여기서 같이 의논도 할 수 있고 같이 모이는 장소여서 감사하고 하나님 이름으로 여기에 다 모였지 않는가?

 

하나님이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좋아하는가? 무식하게 ‘어떻게든 해 달라’고 하고 믿는다고 하면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인생을 책임진다고 믿는단 말인가? 천당에 보내주지 않는다. 절에 가서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이다. 부처라는 방편을 가지고 사람들이 오게 만들어 놓은 것이 절이다. 하나님 이름으로 방편을 만들어준 이것으로 사람을 올 수 있는 것을 해준 것이 방편이다.

 

여기에 와서 맨날 빌고 가고 또 와서 빌고 가고 할 것 같으면 집에서 빌면 되지 않는가? 비는 방법을 배웠다면 집에서 빌지 뭐하려고 절에 오는가? 절하는 것이 부처에게 가서하는 행위라면 마룻바닥에서 허공에다가 부처를 상상으로 그려 놓으면 되는 것 아닌가? 절마루에서 해야만 되는가? 무식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절에 가면 스님이 많이 배우신 분이고 많이 아는 것으로 알지 않는가?

 

절에 가서 의논하고 중류층 이상이면 차라도 한잔 나눌 수 있거나 그만한 급수가 되면 그렇게 하면된다. 말을 해보면 이런 일을 어떻게 하는지 ‘부처님이 알아서 해줍니다.’라고 하면 무식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음부터 안 가면 된다. 빌라고 하면 무식한 것이다. 조상을 천도하라고 하면 이것도 못 푸는데 조상을 천도하란 말인가? 이것을 잘 풀고 웃으면 조상도 해탈된다. 우리 자손이 웃으면 우리 조상도 빙긋이 웃는다. 빙긋이 웃는데 헤매는가?

 

해탈된다. 지금은 이런 시대이다. 과거에는 어쨌든지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것은 무식할 때 하는 행동이다. 무엇을 잘못한지도 모르고 좌우지간 비는 것은 잘한 것이 아니다. 좋다고 세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한다. 세배하는 것이라면 초하룻날 한번 가면 된다. 그건 욕심이다. 무식하면 잘 될 생각을 하지 마라. 무식하면 지금부터라도 배워라.

 

그래서 분별력을 배우고 익히고 갖추어라. 유식하면 무릎을 안 꿇어도 되고 빌지 않아도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앞으로 이런 사회가 되어야 건전한 사회이다. 정신적 지도자의 자리에 있다면 열심히 공부하라. 어느 정도 가지지 않았는가. 열심히 공부해서 어떤 공부를 하는가? 중생들이 의논하러 올때 같이 의논할 수 있는 갖추어야한다.

 

여기에 바르게 살아나가는 법칙을 익히고 이끌어주고 그런 강의 법문을 하고 이끌어라. 그렇게 하면 하늘에서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잘 되게 해주고 이끄는 자들도 잘 되게 해준다. 와서 배우고자 하는 자를 병을 낫게 해준다. 이제는 하늘이 해주는 것이다. 병 낫게 해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이 준 도술을 다 거두었다. 왜? 이제는 우리의 할 일과 하늘의 할 일이 분리되어 자연이 해줄 것은 자연이 해주고 사람이 할 것은 사람이 해야 한다.

 

이제는 멘토가 되어주어야 한다. 나를 찾아오는 자들에게 멘토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멘토 바람이 지금 불고 있는 것이다. 사찰에서부터 교회에서 멘토가 되어주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어려워서 찾아오니 어려움을 바르게 풀 수 있는 것을 연구하고 모색하고 나누고 이런 것을 서로가 이루는 멘토가 되어주어야 한다.

 

나라에 멘토 바람이 바르게 불어준다면 사회는 금방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노력하는 멘토가 있다면 당신들한테 십일조도 갖다 달라고 하지 않아도 다 갖다 준다. 나한테 수입이 있으면 거기부터 먼저 올리고 싶고 이런 것이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다. 뭔가 기왓장을 하나 사라고 하고 돈도 주고 기왓장은 두고 가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팔았다면 주던지 대들보를 팔고 대들보는 절에두고 재산하고 돈도 놔두고 이것을 감사하다고 하고 가라고 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한 것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에게 조그마한 가르침을 준 것은 눈을 뜨게 해주고 마음을 열게 해주고 큰 힘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이제는 신 패러다임으로 심플하게 가야 한다. 이제는 종교도 탈바꿈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다 우왕좌왕하면서 다 빠져나간다. 그렇게 하고도 빠져나간다고 욕하지 마라.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악수를 뜬다. 종교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국민들이 전부 성장한 사회라서 이제 그렇게 하면 늙어서 분별 못하는 자들만 따르고 인재들은 다 빠져나간다. 지금 하는 것은 너무 식상하다. 그리고 돈을 만들고 싶으면 모여 있는 신도들을 잘 이끌면 엄청난 경제가 일어난다. 신도들이 가지고 오는 경제가 아니다. 이것은 과거에 일어날 때의 말이고 다 일어난 힘을 가지고 바른 행위를 해서 창출되는 경제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이것을 못 풀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다 풀어 줄 것이다. 아직까지 코 묻은 돈을 빼앗으려고 하면 언제 크겠는가.